014 | 祭り가 ‘신을 모시는 제사’라면, パン祭り는 뭐야?
祭り의 시작에는 신이 있었지만, 오늘의 祭り에는 꼭 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야.
일본어와 문화는 일본어 속에 담긴 문화와 사고방식을 읽어보는 MEZOJI의 일본어 문화 콘텐츠입니다. 단어와 표현, 언어의 배경을 통해 일본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함께 살펴봅니다.
祭り의 시작에는 신이 있었지만, 오늘의 祭り에는 꼭 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야.
交番은 지금 일본 거리에서 만나는 지역 경찰의 작은 거점이고, 派出所는 그 시설을 예전에 공식적으로 부르던 이름이야. 그리고 警察署는 그 지역의 경찰 업무를 맡는 중심 기관이지.
「一生懸命」는 처음부터 ‘평생 목숨을 건다’는 말이 아니었어.
일본어는 존칭을 쌓아 올리는 언어라기보다,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에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을 고르는 언어에 더 가까워.
「暑中見舞い」는 더위를 전하는 편지가 아니야.
한여름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을 잊지 않고 있다고 전하는 편지야.
MEZOJI JAPANESE CULTURE GUIDE |궁금한 일본어 문화 「京子ね」 THIS STAGE 09 | 왜 일본 여성은 대화에서 자기 이름을 일인칭처럼 사용하기도 할까? 일본 드라마나 일상 대화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어. 「京子ね、今日はパスタ食べたくない。」 문장 속 「京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아니야. 말하고 있는 여성이 바로 교코인데, 「私」 대신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 거야. 한국어로 그대로 옮기면 이런 느낌이지. “교코는 … 더 읽기
같은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는 일도, 그 지역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알고 나면 작은 문화 체험이 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정중히 말을 건네기 위한 「もうし、もうし」였고, 지금은 전화선 너머의 사람에게 “거기 있지?” 하고 건네는 「もしもし」가 되었다.
일본어를 처음 배울 때 가장 먼저 외우는 인사말 가운데 하나가 「さようなら」야.
만날 때는 「こんにちは」, 헤어질 때는 「さようなら」.
교과서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짝처럼 배우지.
그런데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조금 이상한 점이 보여.
아침에 집을 나서는 아이도 부모에게 「さようなら」라고 하지 않고, 출근하는 남편도 가족에게 「さようなら」라고 말하지 않아.
친한 친구와 헤어질 때도 「じゃあね」, 「またね」라고 하지, 「さようなら」는 생각보다 자주 들리지 않지.
분명 헤어질 때 쓰는 인사라고 배웠는데, 일본인은 왜 가까운 사람에게 이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 걸까?
「さようなら」에는 다음 만남이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さようなら」가 단순히 잠깐 헤어질 때 사용하는 말로만 들리지 않기 때문이야.
일본인이 「さようなら」를 들으면, 지금의 만남이 여기에서 한 번 끝난다는 느낌을 받아.
물론 실제로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야.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수업을 마치며 「さようなら」라고 인사하기도 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중하게 작별할 때도 사용할 수 있어.
하지만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는 말이 조금 달라져.
가족은 아침에 헤어져도 저녁이면 다시 만날 사람들이잖아.
친한 친구와도 오늘 헤어지면 내일이나 다음 주에 다시 만날 수 있고.
그런 사이에서 「さようなら」라고 말하면, 평범한 하루의 인사치고는 헤어짐을 너무 또렷하게 끊어 놓는 느낌이 생겨.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는 헤어짐보다 다음 만남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해.
「じゃあね。」
「またね。」
「また明日。」
모두 지금 헤어진다는 사실보다 ‘우리 다시 보자’는 마음이 앞에 놓인 말이야.
집을 나설 때는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본인 가족이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표현은 「行ってきます」야.
글자 그대로 풀면 ‘갔다가 오겠습니다’라는 뜻이지.
이 말에는 집을 떠난다는 뜻과 다시 돌아오겠다는 뜻이 함께 들어 있어.
집에 남아 있는 사람도 「行ってらっしゃい」라고 대답해.
‘잘 다녀오라’는 인사이면서, 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마음이 담긴 말이야.
생각해 보면 「さようなら」와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지.
「さようなら」가 지금의 만남을 일단 끝내는 인사라면, 「行ってきます」는 잠시 밖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인사야.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작별의 말이 아니라 귀환을 약속하는 말인 거지.
그래서 아침에 현관문을 나서는 가족에게 「さようなら」라고 말하면 문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에서는 어딘가 무겁고 낯설게 들릴 수 있어.
마치 오늘 저녁에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원래는 ‘그렇다면’이라는 말이었다
「さようなら」는 원래 「左様ならば」에서 나온 말이야.
「左様」는 ‘그러함’이나 ‘그와 같음’을 뜻하고, 「ならば」는 ‘그렇다면’이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원래의 「左様ならば」는 ‘그렇다면’, ‘그렇게 된다면’ 정도의 말이었던 거지.
예전에는 이야기를 마치며
‘그렇다면 이만.’
‘그렇다면 여기에서 헤어집시다.’
처럼 뒤에 이어질 말을 붙여 사용했어.
그러다가 뒤의 말이 생략되고 「さようなら」만 남으면서, 오늘날의 작별 인사가 된 거야. 일본어 사전에서도 「さようなら」를 「さようならば」가 변한 말로 설명하며, 처음에는 다른 작별 표현과 함께 쓰이다가 점차 독립된 인사말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해.
이 어원을 알고 나면 「さようなら」가 조금 다르게 들려.
가볍게 ‘또 봐’라고 손을 흔드는 말이라기보다, 지금까지 이어진 대화를 정리하고 ‘그렇다면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는 말에 가까웠던 거야.
그래서 일본인도 「さようなら」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헤어질 때, 오랫동안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배웅할 때, 관계나 생활의 한 시기를 마무리할 때는 여전히 자연스럽게 사용해.
다만 오늘 저녁 다시 만날 가족이나, 내일 다시 볼 친구에게는 조금 큰 작별처럼 느껴지는 거지.
가까운 사람에게는 헤어짐을 선언하기보다 다음 만남을 남겨 둔다.
「さようなら」보다 「またね」를,
작별보다 돌아올 자리를 먼저 말하는 것.
일본인 가족이 서로에게 「さようなら」를 잘 말하지 않는 것은, 헤어지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야.
그들에게 가족은 작별할 사람이 아니라, 다시 돌아와 만날 사람이기 때문이야.
東京弁이 깨끗한 말이라기보다, 표준어의 자리를 차지한 말이야.
大阪弁이 야쿠자 말이라기보다, 미디어 속에서 강한 캐릭터로 소비되어 온 말이야.
「空気を読む」는 눈치가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려는 일본식 소통 방식이다.
「すみません」을 많이 쓰는 건 미안해서라기보다, 상대방의 배려를 그만큼 무겁고 깊게 생각한다는 일본인 나름의 깊은 감사 표현 방식이야.
고대 중국 발음의 영향으로 ‘닛폰’이라고 세게 부르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하기 편한 ‘니혼’으로 부드럽게 변한 거야
혹시 ‘일본어는 왜 4박자로 줄어들까?’라는 생각 해본 적 있어?